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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etype: Coda #1 — 약속된 메탈의 땅에서 온 회사

기타리스트라면 한 번쯤 써봤을 Neural DSP. 핀란드에서 온 이 회사 이야기로, '나만의 Neural DSP 만들기' 연재를 시작한다.

연재 소개 — Archetype: Coda 옛날부터 막연히 관심만 있던 VST 플러그인을, 요즘은 AI랑 같이 공부 삼아 밑바닥부터 직접 만들어보고 있다.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Neural DSP 같은 기타 앰프 시뮬레이터를, 동작하는 수준까지 내 손으로 만들어보기. 제목은 Neural DSP의 시그니처 플러그인 라인업 Archetype에서 따왔다. Neural DSP는 유명 기타리스트의 톤을 그대로 담아 Archetype: Plini, Archetype: Gojira처럼 이름을 붙인다. 그러니 Archetype: Coda는 — 이 블로그의 주인장인 까마귀 Coda의 시그니처, 즉 나만의 Neural DSP라는 농담이다. Archetype은 Neural DSP의 상표이고, 나는 그 동네 작명법을 빌려 쓸 뿐이다.

기술 글을 한참 쓰다가, 이번엔 좀 다른 걸 해보려 한다. 코드 얘기는 어차피 뒤에서 실컷 할 테니, 첫 편은 왜 하필 이걸 만들고 싶어졌는지부터 풀어보자. 그러려면 회사 얘기 전에, 나라 얘기를 먼저 해야 한다.

약속된 메탈의 땅

나는 메탈을 듣는다. 이쪽 동네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듣는 농담이 있다.

“핀란드에서는 메탈 밴드가 인구당 제일 많다.”

농담이 아니라 거의 사실이다. 인구 550만의 이 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메탈 밴드 수에서 매년 세계 1위를 다툰다. 길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아저씨가 알고 보면 어느 둠 메탈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그런 나라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도 거기서 나왔다. Nightwish. 심포닉 메탈이라는 장르를 대중 앞에 끌어다 놓은 그 밴드 말이다. 거기에 Children of Bodom, Stratovarius, Apocalyptica(첼로 네 대로 메탈을 연주하는 그 미친 사람들), Insomnium까지 — 장르별로 하나씩 대표 선수를 깔아놓은 듯한 라인업이 전부 이 작은 나라 출신이다.

왜 하필 핀란드일까.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길고 어두운 겨울, 우울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정서, 음악 교육에 진심인 공교육 시스템. 진짜 이유야 아무도 모르지만, 메탈인들 사이에서 핀란드는 그냥 “약속된 메탈의 땅” 으로 통한다.

그리고 이 나라는 소리를 연주하는 쪽뿐 아니라, 소리를 만드는 장비 쪽으로도 유난히 강하다. 이 글의 주인공이 거기서 나온다.

베이스 회사 사장이 만든 기타 플러그인 제국

Neural DSP. 기타나 베이스를 좀 친다는 사람이라면, 안 써봤어도 이름은 들어봤을 회사다. 헬싱키에 있고, 설립은 2017년.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간에 이들은 기타 톤이라는 시장의 판도를 한 번 갈아엎었다.

재밌는 건 시작점이다. 창업자 Douglas Castro는 원래 Darkglass라는 베이스 장비 회사를 만든 사람이다. 기타가 아니라 베이스. 어느 날 직원이던 Francisco Cresp가 “우리 플러그인 하나 만들어보면 어때요?”라고 던진 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베이스 하드웨어 만들던 사람들이 기타·베이스 플러그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의 Neural DSP가 됐다.

하나 더. 두 창업자는 사실 핀란드 사람이 아니다. 둘 다 칠레에서 헬싱키로 건너온 이민자다. 약속된 메탈의 땅에서 그 땅의 장비 명가를 세운 게 정작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게, 나는 이 회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디테일이다.

이미, 처음부터, AI였다

여기서부터가 내가 이 연재를 시작한 진짜 이유다.

Neural DSP가 톤을 모델링하는 방식의 핵심에는 머신러닝이 있다. 마케팅으로 나중에 붙인 게 아니라, 거의 창업 초기부터 그랬다. 헬싱키의 Aalto 대학 DSP 연구 프로그램과 협력하면서, 실제 앰프와 페달의 소리를 학습해 디지털로 복제하는 길을 처음부터 팠다.

회사 이름을 다시 보자. Neural DSP. 신경망(Neural Network)과 신호 처리(DSP, Digital Signal Processing). 이름 자체가 “우리는 AI로 소리를 만든다”는 선언이다. 이게 이 연재 제목이 Neural DSP 만들기인 이유이기도 하다 — 회사 이름을 따라 짓는 동시에, 정말로 neural network + DSP를 직접 엮어본다는 중의적인 농담.

그들의 간판 제품 두 갈래만 짚고 넘어가자.

  • Archetype 시리즈 — 유명 기타리스트와 협업해 만든 시그니처 플러그인. Gojira, Plini, John Petrucci, Tim Henson…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의 톤이 통째로 소프트웨어 하나에 들어 있는 셈이다. 개당 대략 $149.
  • Quad Cortex2021년에 출시한 하드웨어 모델러. 이름의 Quad는 4개의 SHARC DSP 코어를 가리킨다(전체는 6코어). 핵심 기능인 Neural Capture는 실제 앰프 앞에 갖다 놓으면 그 소리를 학습해서 복제해버린다. 좋아하는 앰프를 통째로 “캡처”해서 들고 다니는 것이다.

비즈니스 모델도 영리하다. 2021년 기준 매출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거의 반반이었다. 플러그인으로 진입 장벽을 낮춰 팬을 모으고, 하드웨어로 프로 시장을 먹는 구조. 창업자 Castro는 2022년 핀란드 EY 올해의 기업가로 뽑혔고, 이듬해엔 대통령이 직접 그 성과를 치하했다. 베이스 회사에서 출발한 칠레 이민자치고는, 꽤 멀리 왔다.

유튜브를 켜면 거의 다 이거다

요즘 유튜브에서 기타 커버 영상을 한번 켜보자. 침실에서 헤드폰 끼고 메탈 리프를 갈기는 그 수많은 영상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 체감상 거의 다 Neural DSP다.

이게 나한테는 좀 새삼스럽다. 내가 한창 음악을 하던 시절, 홈레코딩하는 사람들이 욕심내던 장비는 Eleven Rack이나 Axe-Fx II 같은 하드웨어였다. 책상 위에 묵직한 랙 하나 올려두고, 거기에 기타를 꽂아 녹음하는 게 ‘제대로 하는’ 방식이었다. 그때도 VST 소프트웨어나 멀티이펙터가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소리가 어딘가 인위적이었다. 디지털 특유의 빳빳하고 납작한 질감 — 진짜 앰프 앞에 마이크를 세운 그 공기감이 안 났다. 그래서 진지하게 녹음할 거면 소프트웨어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실 그 시절 내 주변의 진짜 괴짜들, 그리고 프로 뮤지션들은 한술 더 떴다. 녹음하러 갈 때 앰프 헤드를 직접 들고 다녔다. 진공관이 박힌 그 묵직한 쇳덩어리를 어깨에 메고 스튜디오로 가는 게, 그들에겐 톤에 대한 타협 불가능한 고집 같은 거였다. 진짜 소리는 진짜 앰프에서만 나온다는 믿음.

그런 세계에서, Eleven Rack이나 Axe-Fx 같은 랙형 시뮬레이터는 사실 구원에 가까웠다. 진공관 앰프 풀스택을 살 돈도, 그걸 울릴 물리적 공간도, 이웃 눈치 안 보고 볼륨을 올릴 자유도 없는 사람들 — 대부분의 침실 기타리스트들 말이다. 그들에게 “앰프 한 대 값으로 수십 종의 앰프 소리를 헤드폰으로”라는 제안은 거의 마법이었다. 톤의 순수주의자들은 여전히 코웃음 쳤지만, 그 마법은 조용히 시장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그 경계마저 사라졌다. 지금은 노트북에 플러그인 하나 꽂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대가 됐다. 묵직한 랙도, 마이킹도, 방음 부스도 없이, 좋아하는 프로의 톤이 프리셋 하나로 깔린다. 한때 “이건 가짜 소리”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소프트웨어가, 이제는 프로의 음반에도 올라간다. 진입 장벽이 바닥까지 내려갔고, 동시에 품질의 천장은 올라간 것이다.

그래서 침실 기타리스트들에게 Neural DSP는 거의 표준이 됐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는, 엔지니어로서 이 광경을 보면 좀 다른 생각이 든다.

저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기타에서 나온 전기 신호가, 코드 안에서 어떤 변환을 거쳐, 저렇게 살아 있는 소리로 바뀌는 걸까. waveshaper? 필터? 컨볼루션? 그리고 그 “신경망”은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 있는 걸까. 노브를 돌릴 때마다 듣기만 하던 그 블랙박스를, 한번 열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물론 Neural DSP를 이기겠다는 게 아니다. 그건 수십 명의 DSP 박사들이 몇 년을 갈아 넣은 결과물이다. 내 목표는 훨씬 소박하다.

소리가 코드 안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동작하는 가장 단순한 기타 앰프를 내 손으로 한번 만들어보기.

그리고 그 과정을 요즘 내 일상이 된 AI와 함께 공부하며 정리해보려 한다. 모르는 신호 처리 개념을 AI에게 묻고, 같이 코드를 짜고, 막히면 논문을 같이 읽는 식으로.

연재는 두 막으로 간다.

  • 1막 — AI 빼고, 고전적인 DSP만으로 동작하는 기타 앰프를 먼저 완성한다. 신호 체인을 해부하고, gain → 디스토션 → 톤 스택 → 캐비닛까지 하나씩 코드로 옮긴다. 일단 소리가 나는 플러그인을 만드는 게 1막의 끝.
  • 2막 — 거기에 AI를 얹는다. 회사 이름의 그 “Neural”이 실제로 어디에 들어가는지, 여기서 본격적으로 파고든다. (이 동네에서 DDSP라고 부르는 물건이 그때 등장한다.)

순서가 중요하다. 먼저 동작하는 걸 만들고, 그다음에 똑똑하게 만든다. AI부터 꺼내 들면 정작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를 영영 모르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자, 약속된 메탈의 땅에서 온 회사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런데 앰프 뚜껑을 열기 전에, 더 밑바닥의 질문 하나부터 짚어야 한다. 내 기타 소리는 대체 어떻게 컴퓨터 안으로 들어오는가 — 줄의 떨림이 숫자가 되는 그 여정부터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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